후기를 쓰려고 노트북 앞에 앉았는데 뭐부터 써야 하나 한참 멍때리다가, 그냥 폰 메모장을 열었다. 나는 여행 가면 메모장에 아무거나 막 적어두는 버릇이 있는데 이번 나트랑 것도 고스란히 남아 있길래, 그걸 거의 그대로 옮겨보기로 했다. 잘 정리된 후기보다 이런 게 더 도움될 때도 있으니까.

배경만 짧게. 남편이 골프 시작한 지 3년 됐고 요즘 아주 푹 빠져 있음. 결혼 9년 만에 애 친정에 맡기고 둘이서만 나간 첫 여행인데, 행선지가 골프장이 될 줄은 몰랐지... 나는 필드 나가본 게 손에 꼽는 수준이라 반쯤은 리조트+시내 구경 목적으로 따라갔다. 결론부터 말하면 둘 다 만족하고 옴.

메모 · 6월 24일 (수) 밤 11:02
나트랑 챙길 것
✓ 선크림 SPF50 두 개 (진심임)
✓ 남편 장갑 새 거, 볼 한 더즌 — 어차피 다 잃어버림
✓ 달러 소액권 (캐디팁용)
✓ 라운딩용 얇은 긴팔
✓ 수영복 — 리조트 수영장 필수
□ 모자 → 못 챙김, 결국 현지에서 삼

깜란 공항에 내리니까 가이드 티엔 씨가 이름 팻말 들고 서 있었고, 차가 7인승 밴이었다. 둘이 가는데 7인승이라 골프백 두 개 싣고도 자리가 남아돌았음. 이때부터 뭔가 편할 것 같다는 예감.

아남 리조트 깜란. 사진보다 실물 정원이 더 넓다

숙소는 아남 리조트 깜란. 5성급이라는데 솔직히 별 개수보다 정원이 기억에 남는다. 체크인하고 방까지 걸어가는 길이 다 나무 그늘이고, 방에서 커튼 걷으니 바로 바다. 남편은 짐도 안 풀고 발코니에 나가서 한참 서 있었음.

메모 · 6월 26일 (금) 오후 6:40
도착 첫날
리조트 웰컴드링크 맛있음, 뭔지 모르겠지만 리필하고 싶었다
한국 분들 꽤 보임. 다들 골프백 들고 다니심 ㅋㅋ
시내까지는 차로 30~40분. 가깝진 않다 (깜란 쪽이라)
저녁: 시내 해산물집, 새우 킬로로 시키는 거 신기
돌아와서 남편 연습 스윙 하다가 소파에서 잠듦

하나 미리 적어두자면, 아남이 시내 번화가랑은 좀 떨어져 있어서 밤마다 시내 나가 놀 생각이면 참고. 대신 조용하고, 골프장 두 곳이랑은 가까워서 골프 목적이면 오히려 이 위치가 정답인 듯.

KN 골프 링크스. 이 호수 홀에서 남편 볼 두 개 수장

KN 골프 링크스. 이 호수 홀에서 남편 볼 두 개 수장

둘째 날이 KN 골프 링크스. 리조트에서 금방이었다 (공항 옆이라 10분 정도?). 새로 생긴 코스라 그린 컨디션 좋다는 얘기는 들었는데, 진짜 좋았다. 남편 표현으로는 "굴러가는 게 다르다"는데 나는 잘 모르겠고, 일단 페어웨이가 어이없게 넓어서 나 같은 초보도 마음이 편했다. 대신 바닷가 링크스라 바람이 장난 아님. 모자 붙잡고 침.

메모 · 6월 27일 (토) 오후 1:15
KN에서 적은 것
티오프 일찍 잡아준 게 신의 한 수. 10시 넘어가니 해가 무서움
캐디 언니가 얼음물수건 계속 갈아줌. 천사
남편 91타 (본인은 88이라고 주장)
나: 세다가 포기. 대신 사진 원 없이 찍음
모래 언덕 사이 홀들이 진짜 외국 같다. 아니 외국이지

오후에는 라운딩 끝나고 시내 구경. 나트랑 대성당이랑 롱선사를 갔는데, 대성당은 돌계단 오르는데 한낮이라 땀이 줄줄. 그래도 위에서 보는 시내 뷰는 예뻤다. 롱선사 큰 불상 앞에서는 남편이 스코어 잘 나오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함. 절에서 빌 게 그거냐.

중간에 들어간 로컬 카페 코코넛 커피가 이번 여행 음료 1등. 이름을 적어놨어야 했는데 그건 메모를 안 했네...

해 질 무렵 KN 그린. 이 시간대는 좀 반칙이다

해 질 무렵 KN 그린. 이 시간대는 좀 반칙이다

셋째 날은 다이아몬드 베이 골프 클럽. KN이 바다·모래 느낌이면 여기는 산이 코스를 빙 둘러싸고 있어서 분위기가 완전 다르다. 남편이 "여기 앤디 다이가 설계한 데야"라고 아는 척을 했는데 나중에 보니 투어 설명문에 있는 내용이었음.

메모 · 6월 28일 (일) 오후 8:30
다이아몬드 베이 + 오후
난이도가 KN보다 순해서 나도 재밌게 침. 초보는 여기가 더 좋을 듯
캐디 언니가 한국어 단어를 꽤 알아서 "나이스 샷!" 발음이 나보다 좋음
나 인생 첫 파 기록 (파4에서!) 남편보다 내가 더 소리 지름
사진 찍느라 진행 느려져서 뒤 팀에 좀 미안했다...
오후: 원래 빈펄이나 호핑투어 가도 된다는데 우리는 마사지 2시간 선택. 후회 없음
팁은 현금으로 준비해야 함. 이건 미리 알고 가길

마사지 받고 나와서 마지막 밤이라고 시내에서 좀 걸었는데, 강변 야경이 생각보다 괜찮았다. 남편은 이미 머릿속으로 오늘 라운딩 복기 중이라 대화가 안 됐지만.

다이아몬드 베이. 산이 코스를 감싸고 있어서 KN이랑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

다이아몬드 베이. 산이 코스를 감싸고 있어서 KN이랑 분위기가 전혀 다르다

마지막 날은 리조트에서 늦은 조식 먹고, 수영장에서 좀 뒹굴다가 체크아웃하고 공항으로. 티엔 씨가 끝까지 짐 실어주고 손 흔들어줬다.

메모 · 6월 29일 (월) 돌아오는 비행기
정산 + 총평
패키지 1인 백십만 원대 — 리조트 3박, 그린피·카트·캐디, 차량, 한국어 가이드까지 포함이라 계산해보면 따로 예약하는 것보다 나음
현지에서 쓴 돈: 캐디팁, 마사지, 해산물, 커피, 모자 하나
남편 만족도 ★★★★★
내 만족도 ★★★★☆ (더위로 반 개 깎음, 나트랑 잘못은 아니지만)
다음엔 겨울에 오자고 벌써 약속함. 서울 추울 때 여기서 치자고

이번 일정은 티그룹이라는 데서 우리 둘만의 단독 투어로 짜준 거였는데, 골프 예약이며 차량이며 내가 신경 쓴 게 하나도 없어서 그게 제일 좋았다. 골프 안 치는 나까지 심심하지 않게 시내 일정을 끼워준 것도 점수 줄 만함.

나트랑 골프 알아보는 분 있으면 참고하시라고, 우리는 카톡에서 티그룹 검색해서 상담받고 갔다는 것만 적어둔다. 궁금한 건 댓글로 물어봐도 되고. 그럼 이만, 남편이 또 스크린 치러 가자고 해서 나가봐야 함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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